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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진 배움의 길



* 본가가 좌글루인 관계로 여기도 좀 관리해야지 싶어 근 2년만에 글 올려봄 'ㅅ'
  요즘 좌글루 병신같은데 아예 여기를 메인으로 전환하든가 해야지...

  명초의 이갑제는 농업생산의 양대 기반인 토지와 노동력을 기준으로 하여 조세징수와 치안, 교화 등의 일반행정기능 단위를 편제한 향촌조직제도였다. 국초에, 본 제도에는 일반민에 대한 윤번제 이갑정역의 부과를 통해 각급 지방행정관(주현관)이 지고 있는 말단 행정기능의 운영부담을 경감시키면서, 자산기준에 따른 균등한 세역부과 원칙과 이노인-신명/정선정 설치를 통한 교화기능을 통해 자작농 중심의 향촌사회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기대되었다. 그러나 대토지소유의 증대와 이에 따른 지주전호제를 이용한 피역행태의 증가, 도호/유망민의 발생, 상등호의 이탈 등으로 이갑역의 부담이 과중해지면서 균분균역의 원칙이 붕괴하고, 농업생산과 상업발달로 사회분화과정이 진전되면서 이노인의 기능이 무실화됨에 따라 이갑제는 사실상 주요 기능들을 상실하게 되었다.


  명조는 이갑제의 무실화에 따른 세역부과체계
, 도호, 사회교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갑제 내외에서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역부과 면에서 명조는 균요법, 십단법 등 이갑제 체계 내부에서의 해결 노력을 경주하면서, 일조편법으로 부세종목과 징세절차를 간소화하고 국가기구에서 징세 및 운반과정을 일부 담당하도록(관수관해) 했다. 도호문제에 대해 명조는 기본적으로 원적지 발환주의를 고수하면서, 당 개원연간 우문융의 괄호정책과도 흡사한 객민부적을 임시정책으로 활용해 노동력의 누수를 막으려 했다. 종래 이노인이 담당했던 향촌교화기능은 점차로 지방관이 해 지역의 지도층(신사)과 협의해 운영하는 향약과 가례를 통해 관 주도로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반란/광도/왜구 등의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역시 관 주도로 결성된 보갑제가 치안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보갑제는 청조가 입관 후 내지의 점령지 통치를 안정화시키는 데에 자위기능보다 자체감시기능으로 일정한 공효를 내었고, 이후 강희-옹정-건륭시기를 거치며 보다 광역적인 단위를 포함한 3급제로 정착되고 치안유지기능을 회복했다.


  향촌조직의 구성 체제로서 이갑제가 문면대로의 의미있는 지위를 차지한 것은 그렇게 길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적어도 선덕-정통연간에 이르면 이완현상이 분명해지는 것이 사실이고, 엄격하게 말한다면 단지 국초의 홍무 연간 동안만 기대했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시적인 차원에서 이갑제의 실패를 단정하기 전에, 이갑제가 과연 어떤 배경을 갖고 채택된 제도인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근대 중국황조의 지방통치에 대한 기본자세는 중앙정부와 지방 기층 행정기구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 이는 광대한 강역으로 인한 기술적 어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그 연장선상에서 근현대 정부조직의 예산운영원칙인 소위 양출제입과는 달리, 사실상 양입제출의 기조로 세입이 관리되고 사용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각급의 행정사무에 투여되는 자원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성당기(대력 연간 전)의 당조에서 세입이 줄어들면 용관부터 정리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따라서 지방통치의 직접적인 사무부담은 규모 및 주거형태에 의해 조직화된 하부 향촌조직에 역역의 형태로 부과되는 것이 합리적이었고, 이는 명청대 이전에도 항존했던 정제였다.


  예컨대 이미 한대에는 향
--리로 규모와 기능에 따라 각급 단위와 행정담역자(이장, 이정, 정장 등)의 역할이 규정되어 있었고, 당대에도 호수에 따라 향(500)-(100)제가 실시되었으며 이는 오대를 거쳐 송대에 이르기까지 사회변화에 의해 무실화는 될지언정 지속적으로 존재하고 재정되면서 기능을 수행했다. /원과 같은 이민족 통치하에서도 이러한 향촌조직제도는 촌사제/향도제 등의 명칭으로 지속되었다. 치안조직으로서의 보갑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미 한대에 정(, 정장), 당대에 인보제로서 그 원형이 존재하며, 북송대 왕안석의 신법을 통해 정제화되었고, 남송대에는 이것이 향리/향도제의 행정기능까지 흡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명초의 이갑제는 여러 황조 창업초기에 보이는
답습으로서의 재생물에 불과한가? 그와 같은 단정 역시 무리가 있다. 징세와 교화라는 향촌조직제도의 양대 기능면에서 이에 대한 반박이 가능하다. 노동력에 초점을 맞추어 조조역을 부과했던 조용조제와 달리, 양세법은 적어도 그 시점에서만큼은 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잡요를 철폐, 절납시켰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는 오히려 국가의 개별인신에 대한 장악력을 감쇄시키고, 자작소농 위주의 균평적 사회의 붕괴를 정부차원에서 인정하는 것이 되어, 차등 있는 역역부과에 따른 국가와 인민의 유대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로 인해 송~원시기 이러한 모순(대토지소유/불균형사회를 인정하는 양세법적 현실 / 소농 위주의 안정된 사회를 추구하는 목표)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고, 그 결과 명대에 양세법제 하에서 징세 등 행정기능을 수행하는 이갑정역의 차등부과라는 형태로 양세법적 현실이 전통적 이상에 안착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이 원말의 사회붕괴상에 의해 나타날 수 있었던 막간적 조건에 의거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교화기능 면에서 바로 전의 원대와 비교할 때
, 이갑제는 기능의 통폐합 면에서 효율화를 도모했다. 원은 금조로부터 물려받은 ()’를 권농/교화의 단위로 재정하고 기존의 향촌조직(:촌사제/:향도제)과는 별개로 설치했는데, 차츰 이것이 일반행정기능까지도 맡게 됨에 따라 누중누적 현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명조는 이갑제하에서 신명/정선정 설치와 이노인의 지정을 통해 원대에 에 기대했던 기능을 향촌조직 내로 통합시켜 일원적인 향촌지배를 꾀했다.


  6
/성유광훈에 의한 관 주도의 교화역시 역사적 연속성을 감안해 조망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6유의 내용은 서위시기 우문태와 소작이 합작해내 지방관들에게 교육/반포/준수하도록 지시했던 ‘6조 조서의 내용들과 닮아 있다. 이는 이미 진대에 5조조서 등의 형태로 나타났고 다른 조대에도 상계리/조집사 칙계 등을 통해 존재했던 것이지만, 명청대 향촌조직이 수행한 교화기능은 이들과 방향성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6조조서 등의 시도가 기본적으로 황제에 의해 지방관에게 하달되는 행정수지지침의 성격이었다면, 6/성유광훈은 덕률적 규범이 황제에 의해 직접 향촌조직에 하달되고, 다시 그 향촌조직 내부에서 스스로 권면 실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호의적으로 평가한다면 <大學>明明德구도를 체현하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으며, 송원대 이후 주자이학의 저변 확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기존의 제도에 머무르지 않고 이상과 같이 다소의 변용과 적응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 이갑제는 사회변화와 경제성장, 제도 자체의 결함들에 의해 기반조건을 상실해 무실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갑제의 붕괴에 관해 주목해야 할 점은, 이갑제 등의 기존 향촌조직이 아무런 대안 없이 해체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컨대 이갑과 별도의 구획(, 세량 1만 석 기준)으로 설정되어 조운을 주무로 하는 역역인 양장(糧長)의 경우, 일조편법의 진전과 더불어 관수관해/자봉투궤가 정착되어 이를 대체했다(청대, 단 새로운 청부형태인 포람이 등장했다). 교화/치안기능 면에서는 보다 관의 개입이 강한 향약과, 보갑제의 재등장으로 그 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대체물이 모색되는 가운데, 현실 경제상을 인정한 위에 일조편법/지정은제 등으로 과세기준과 절차는 근본적인 변혁을 맞았고, 여기서 다시 호구수 원칙이라고 하는 기존 향촌조직의 핵심적 대원칙이 강희연간의 성세자생정 설정으로 불필요해짐에 따라 향리제(이갑제)적 향촌조직은 본연의 성격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청대 순장법과 보갑제의 적용방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연촌락단위와 종족조직이 향촌지배의 핵심에 자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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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vermin
▲ 이젠_모든걸_갚아줄때가_왔다.jyp

  이하의 내용은 1880년대를 전후하여 박제형에 의해 찬술되었다고 추정되는 <근세 조선정감>에서 추출한 것입니다. 물론 정격적인 사록은 아니고 야사집에 불과한 격의이기는 하지만(실제로 연대나 인명, 사건의 선후관계에서 오류가 꽤 있습니다), 제사에 대해 꽤 신선한 해석이나 드라마성 짙은 장면들을 여럿 보여주고 있어 그중 흥미로운 한 부분을 짚어 올립니다.


(전략) 왕(흥선군의 아들 이명복, 고종)은 그때 어린 나이로서 금위영 새 동산에서 연을 날리며 놀고 있었다. 대신이 여러 유사를 거느리고 왕의 앞에 나아가서 왕대비의 교지를 읽은 다음 정원용이 꿇어앉아 눈물을 드리우며,

  "노신이 불행하게 여섯 조정을 내리 섬겼고, 지금에 두 번째로 새 왕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왕은 어리둥절하여서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고, 흥선군과 부인은 꿇어앉아서 왕의 손을 잡으면서

  "이로부터는 이 손도 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왕이 드디어 보련을 타고 복건과 담청색 도포로 궁에 들어가는데, 구경하는 자들이 길을 메웠다. 호위하던 군사가 채찍을 휘둘러 힘껏 때리니 늙은이와 어린이는 엎어지고 넘어지며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서 전진할 수가 없었다. 왕이 보련을 멈추도록 명하고 대신을 앞으로 불러 묻기를,

  "대신들이 나를 데리고 가서 무엇하려고 하오?"
  "임금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왕이 말하기를,

  "왕이란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이 아니오. 지금 왕으로 되려고 가는 것을 백성들이 모여서 보는 것은 바로 나를 사랑하는 것인데 어찌해서 함부로 치는 것이오. 추위가 또 심한데 사람이 상할까 염려되니 군사에게 길을 벽제하지 말도록 금하는 것이 마땅하오."

하였다. 대신이 공손히 응낙하고 왕의 말씀을 선포하니, 백성이 이미 왕의 말씀을 직접 들었으므로 기뻐하는 소리가 우레같으며

  "우리들은 걱정없다."

하였다.


  유주의 천진함과 관후함, 그리고 "이로써 내 옛적 상가지구질 다 보상받았다 아들 땡큐 ;ㅅ;" 하는 대원위 대감의 떨리고 폭발적인 감흥을 모두 맛볼 수 있어 썩 재미있는 기사였습니다. 이외에도 흥선대원군의 여러 시책에 대해 아주 세목적으로 비판하거나 지지하고 있고, 골계미 넘치는 일화들을 던져주고 있어, 사료로서의 의미는 그다지 없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재미로나마 읽어 볼 만 합니다.

  한가지 부언하자면 소위 안동 김씨의 세가의 축이 되었던 여러 명사들-김병기, 남병철, 김흥근 등등 에 얽힌 일화의 시리얼을 풀어내면서, 이들이 인격적/재예(특히 문재)로는 비길 바 없이 현요한 사람들이었다는 면모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마치 동한의 상제-안제 연간 외척으로서 권신이었던 등즐 형제 등에 대해 "현사를 아끼고 수덕할 줄 알았다"는 평과도 비슷한 것 같아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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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vermin

▲ 충언역이 인정 ㅇㅇ



  충간직간하고 신자로서의 정견을 뚜렷하게 제시한다는 건 하는 쪽에서나 듣는 쪽에서나 다 쉽지 않은 일이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직소하는 관인/사인의 입장에서는 다른 걸 차치해두고 일단 터미널값으로서의 결과 면에서는 어느 정도 목숨을 거는 일이다그 목적이 교속간명하는 탐오한 것이든 진짜 염결하고 고아한 것이든 동산에 한거(사 태부님 미안)’ 하고 있어도 물리적으로 사멸하지는 않았음을 웅변하기 위한 몸부림이든 어쨌든 무연하다게다가 보통은 그 내용이, ‘영제상으로는 법문을 아무리 뒤져봐도 도저히 어떤 수단과 명의로든 제약할 근거가 나오지 않는’ 군후의 전정행위(성격이 나쁘든 좋든 간에)에 대한 지적임을 감안한다면,직간한 사실 자체가 전세의 미담으로 남을지 대의멸사의 비극으로 전해질지는 까놓고 말하면 전적으로듣는 인주에게 달렸다고 밖에는 할 수가 없다길게 말할 필요 없이우리는 사록에서 조보와 다른 재신들에게자네들 서생배라고 손가락질했던 송 태조나숙장들에게 배포 유하게 밥 한끼 쏘려다 예전상 그런거 업ㅂ다는 말을 듣자마자 열폭해서 말나온 문리를 참하려 했던 후당 장종완벽하고 처절히 왕관을 씹었던 진 시황제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단 횟수와 그 질이 압도적이다아니사실 재위기간 이정도 쯤(14년여되는 인주치고 근수를 매겨야 할 정도로 탄정당하고 상소를 받지 않은 경우가 있을까 하기도 하겠지만통감에 실리는 것이 문위가 빼어나거나 인상적인 것임을 감안할 때또한 당기의 그를 전후한 인주들에 비교할 때그 밀도가 대단히 높고 가선생 질질 짰던 것 이상으로 자못 절절하다는 점이 특기할 만 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무려 20여 회가 넘는 상소직간시책결정을 위한 구체적 의문(議文)에 관련된 기사들의 내용 역시 각양각색이다지극히 개인적이고어떻게 보면 정중의 어법이 느슨하다 볼 때 오히려 문제될 것도 없어 보이는 액정의 비빈/후궁 숫자 문제(정위 고유의 상소)나 사적 소비의 절용에 관한 것(소부 양부)에서부터구체적인 인사정책 정향에 관한 것(행사도사 동소), 형률의 적용과 정비(상서 위기태부 종요), 군사작전상의 세목적 지시에 대한 인허 요청과 방위거점의 재설정에 대한 논란의 조정(정동장군 도독양주제군사 만총), 심지어 화폐유통에 관한 것(사마지 등등 추밀중사와 국정 전반에 관해 다양한 주제와 의론들이 활발히 명제에게로 향하고 있다.

 

어쨌든 간에 최소한 국사와 관련된 제기라면 理에 입각한 평중적 수용이 무조건 가능했을 테니까 별 거 아니냐-라고 한다면, “나는 무류의 제왕이로소이다라는 이니셔티브를 저열하게든 수단 좋게든 너끈히 드러내 보일 수 있던 수많은 인주들(명 신종이라든가남제 동혼후라든가유송 효무제라든가북제 문선제라든가후조의 석호라든가…)이 살의의 파동에 눈을 뜨게 만든 충간은 주로 어떤 식으로 배드엔딩에 꼴아박혔는지를 잘 생각해 보고 명제의 케이스를 한번 다뤄 보자. 위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개인적 취의에 의한 물화 구하기에 관련된 것이나일상적 예제상의 실수인사조치상의 오점(가끔은 피 튀기는 주륙이 동반된다), 장고와 내탕고를 동시에 훑어가는 궁실조영이나 대규모 토목역사에 관련된 경우가 많다즉 기층덕률적 차원에서 누구나 하는 욕에다 문식만 하면 되는’ 사안에 관한 것-간단히 표현하자면 너님이 덕이 없어서(완곡하게 말하면 수덕하지를 않으셔서 ’ ;;;) 일어나는 잘못된 제상에 대한 비판에 의해 보통 기폭장치는 작동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읽어주시는 제현께서도 꾸준히 지적하신 바 있고사실상 명제의 크나큰 오점으로 수많은 독서인들에 의해 까이는 대역이 이 이탄층과 겹친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즉 환언하자면크고 아름다운 스케일의 궁실조영과 사치스러운 미감의 충족을 멈출 줄 몰랐고일상적인 예제나(예컨대 복식처첩에 대한 처우와 취의의 반영(조씨가 전통의 호색기질은 어디 가질 않았나 보다등에서도 여러 가지 허점을 갖고 있었고 실제 이에 대해 적잖이 충간을 받았던 명제가 어쨌든간에 폭발한 적은 딱 한번(나중에 언급할 것이다소규모로(‘’)한 적 밖에 없다는 것은아주 낮게 평가한다손 치더라도 전술한 씹고 패는’ 암군들보다는 나은 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사실 여기서 그치는 것은 명제에게는 대단히 중정하지 못한 언설이다오히려그는 수많은 직간을 직접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며이를 자신의 태의에 직접 반영하거나 시책으로 곧바로 발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최소한 예를 갖추어 양의를 표하거나 형식적으로라도(가끔은 친필조로) ‘진정에 감사한다고 전하고 있다(사록을 지도료(知道了)’로 가득 메운 누군가와는 확실히 운니의 차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하는 통감에 실린 순서대로이다통감필법에 의한 것이므로 일자가 정확하지 않은 것은 해당연대의 가장 마지막에 가 있으므로일순까지 다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다.]

-      중서령 손자가 팽기의 책동에 관해 간함 -> 채택

-      사도 왕랑이 궁실 조영을 중지할 것을 간함 -> 수리

-      중서령 손자가 제갈량의 침구에 대해 대규모 정토를 하려는 것을 만류함 -> 채택

-      사마지 등이 오수전을 다시 통용할 것을 의문으로 올림 -> 채택

-      태부 종요가 육형을 다시 실시할 것을 간하고 이에 대해 왕랑이 반박함 -> 왕랑의 의견을 좇음

-      상서 위기가 율박사를 둘 것을 상주함 -> 채택

-      행사도사 동소가 부화한 자들이 중용되는 것을 경계하여 간함 -> 채택

-      조진의 서정이 큰 비로 차질을 빚자태위 화흠소부 양부산기상시 왕숙이 회군할 것을 간함 ->채택

-      동아왕 조식이 종친을 중용하고 중시할 것을 간함 -> “조서를 내려 회답”, “다만 좋은 문장으로 회답

-      급사중 곽모가 만총에 대한 참소를 경계하여 간함 -> 채택

-      진군과 양부가 딸 조숙이 죽어 그 장례에 참가하려 하는 것을 중지하도록 간함 -> “듣지 않” 았으나 간한 자에 대해 여하한 제재도 없음.

-      산기상시 장제가 공손연에게 사작하는 것에 반대 -> “듣지 않” 았으나 간한 자에 대해 여하한 제재도 없음.

-      유엽이 진교를 참소 -> 진교가 두려워했으나” 황제의 뜻이 해소되다.

-      염소가 참소함을 두서가 상소 -> 수리

-      만총이 합비에 신성을 두어 방비할 곳을 옮길 것을 건의하고 제신들이 논함 -> 채택

-      진군이 낙양궁을 중건하며 비용이 지나치게 소요되는 것을 간함 -> 부분 채택

-      정위 고유가 비빈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고여상서가 납언에 간여함을 간함 -> 수리

-      정위 고유가 수렵에 대한 금법이 지나치게 엄격한 것을 간함 -> 수리

-      위위 신비가 북망산에 대관을 짓는 것을 중지하도록 간함 -> 채택

-      소부 양부가 절용 검약할 것을 간함 -> 수리

-      장제왕기가 절용할 것을 간함 -> 수리

-      상서 손례가 역역을 철페할 것을 간함 -> 채택

-      고당륭이 수덕 절용할 것을 자주 간해 황제가 자못 기뻐하지 않는 것을 보고 노육이 고당륭의 진정에 대해 간함 -> 채택. “황제의 노여움이 풀렸다

-      사도연 동심이 장안의 기물을 옮기고 지나치게 사치하는 것에 대해 간함 -> 수리

-      고당륭이 죽기 전 구술해 상소함 -> 수리

 

대강 이유를 아시겠지만이중 볼드때린 것은 명제가 암군’ 이었다면 얼마든지 살의의 파동에 눈뜰 수 있는(‘’) 지뢰 충간이다다시금 말하지만 명제의 사치스러운 취의는 부황을 가히 넘는 바가 있었다 할 수 있는데어찌 보면 그의 감성의 근저가 가장 열폭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와 관련된 충간임에도 불구하고그는 최소한 그런 직간대로 진짜 절용하려고 나서지는 않더라도통감과 명제본기에서 표현하고 있듯이우조”, 즉 좋은 말로 회답/위로해 주고 있다황제가 그의 말이 훌륭하다고 하였다”, “짐은 공경하면서 경계할 것을 잊지 않겠다”, “황제의 뜻이 해소되었다/노여움이 풀렸다”, “번번이 훌륭한 말을 하였다다른 이야기도 다시 들려주도록 하라”, “황제가 감동해 손수 붓을 들어 조서를 내려 답했다와 같은 수많은 기술들은명제가 병필태감을 두고 초록 패스 도장꽝 초록 패스 도장꽝 하는 식의 성의없는 태도로 수많은 상소들을 대하지도 않았고끝내주게 심기에 거슬리는 역언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표관적인 예우그리고 고굉의 신이 목숨걸고 저질러 주는 충간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줄 알았던 인주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심지어 양부가 명제의 옷차림에 대해 니마 이건 어디서 배워먹은 꼬라지임?”라고 면전에서 이야기해도 이 개객기가 하고 상방검으로 내리치기는커녕 이후로 법도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는 양부를 만나지 않았다는 기사는서한 무제가 측간에 박히든 어디에 있든 니마 급암 떴음” 소리만 들으면 의관을 단정히 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까지 있다이런 면에서만 본다면 명제에게는 정말 보다도 이 시호로는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慈和遍服爲順)비교적 가까운 대의 손성이 명제에 대해 관후한 태도로 직언을 좋이 생각하였다비록 면전에서 심한 간언을 했다 하더라도 그들을 꺾어버리거나 주살하지 않았으니갖고 있는 도량이 이처럼 위대하였다고 한 것은 위와 같은 예들을 보면 괜한 공치사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한편으로 제신에게는 좋은 직간의 청자이자 인후한 황제였을는지는 모르지만명제는 익히 조위가 전세하지 못한 이유로 사가들 사이에 꼽히는 것을 제공할 정도로친족황가의 인속들에게는 부황의 경향을 이어받아 정책적으로는 대단히 냉엄하였다이미 문제 대에 같은 항렬의 제 후를 공으로 작위를 올리고이중 친소에 따라 왕작까지도 사작했지만마지막 순간(유례없이 세 개의 연호가 겹쳤던 이상야릇한 12.12적 연도 건안 25/연강 1/황초1)까지도 조창과 한타차 싸움을 했던 경험이 있는지라 문제는 방보와 감국을 두어 제후왕을 철저히 감시하고 폐질의 싹이라도 보이면 곧바로 삭작하거나 제재를 가했다(이것 때문에 쫄아서 북해왕 조곤 같은 자는 니마 내가 덕업이 있어도 위에는 말하지 마셈난 조용히 살고싶다능” 하기도 했었다).

 

명제의 제후왕에 대한 정책도 큰 차이는 없다. 그런데 사실 즉위시 문제만큼의 경쟁구도는 아니었기 때문(오포넌트가 최소 2+인 것(조식조창)하고 있어봤자 하나(서희의 아들이었던 경조왕 조례)인 것은 실로 운니의 차가 있다)이기도 하고일세가 넘어갔으니 황위에 대한 공위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할 테지만,예의(그리고 꽤나 유명한조식의 장황한 상소가 나오게 된다건안칠자의 문사답게 버터칠 쟈르르하게 잘된 절륜한 문식과 선어를 자랑하기는 하지만여하간 그 논지는 니마 종친은 국조의 번병이 되는거임 세로 위압하고 멀리할 게 아니고 권귀에 꼴아넣고 현달하게 해줘야 하는거임 아니 이렇게는 못해준다손 치더라도 젭알voyeurism만 거둬주셈 ;종자유성 종자유성 하는거임 ㅇㅋ?”인데위에서 보았듯 명제는 선물 오가고 문안하는 거까지 폐한 적 없었뜸 ’ 니마 오버까지 마셈 그리고 이미 유사에 심하게 스팽킹질 하지 말라고 해놨으니 염려 놓으셈하고두번째 상소가 올라왔을 때에도 다만 좋은 문장으로 회답 했을 뿐이었다이뿐 아니라 명제는 빈객을 초치하기 좋아했던 조간에게 경고장을 날리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이런 지나친 황친 통어가 문제가 된다고 밝히는 것고금을 통틀어 수많은 사가들이 전하고 있는 번병이 없어 외로워 망했다는 명제인데사실 수 문제의 “One step closer” 리치와 더불어 이것도 좀 버스팅 당해야만 마땅한 ‘myth’일지도 모른다뭣보다 중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사가들이 병치시키는 사실이지만바로 뒷대의 사마씨가 서진이 종관적으로는 팔왕의 난을 맞이했고동진대에 들어서도 회계왕 사마도자나 왕작을 꿰고 장군직에 상직까지 겸했던 즉위하기 전의 간문제와 같은 예가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이것은 이성 이중정권보다도 오히려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는데즉 황조 자체가 연속성을 갖고 지속된다는 면에서는 나을지도 모르지만역으로 제왕 혹은 제세간의 병란을 전후하여 1. 어쨌든 황위에 오르면 어느 정도 안태는 보장할 수 있는 제위의 후보자들이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꼴이 반복되고2. 최악의 경우라도 선위하여 일가의 전세는 보장할 수 있는 이성 권신과 달리 제노사이드 주멸크리와 척족명족 같이 목날리기가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며3. 중조(황제)와 제왕의 세형을 유지한다손 치더라도 언젠가는 번왕들을 깨뜨려야 하는 가의-조조 딜레마가 반복(반정이 실패하면 오초 7국의 난이고성공하면 명대 정난변인 것이다)된다는 면에서는 분명 더 파괴적일 수도 있다.

 

물론 이렇게 명제가 부황의 시책을 계승해 번병을 제대로 마련해 주지 못해서’ 조상의 실각과 나아가서는 고귀향공의 비극을 낳았다는 연인도 당연히 감안해야만 하는 것이지만두 가지 측면에서 이에 대해 비판할 수도 있다첫째는 명제가 문제처럼 사생활의 대역을 침해하고 황친으로서의 유대까지 무시할 정도로혹독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예의 조식의 상소에서두번째 상소를 받은 후 조예는 우조를 다시 내려 니마 아부지가 제왕을 경도에 두지 않은 거는 나놈이 아직 어려서 제왕들에게 간정당할지도 모르는 사태를 막으려고 한거임라고 설명하고왕공후들에게 적자 한 명씩을 보내어 조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했다이는 다분히 산킨코타이적 통번책과도 같은 인질잡기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적어도 동성제후들과의 소통을 위한 창구로는 기능할 수 있지 않았을까또한 명제가 임종에 가까워 처음 보정을 맡기려고 했던 사람들(연왕 조우(무제의 아들), 영군장군 하후현무위장군 조상(조진의 아들), 둔기교위 조조(조휴의 아들), 효기장군 진랑 등중 친족이 다수를 차지했다는 점과자신의 중서계통 총신이나 사마의와 같은 영걸적 존재’ 보다도 먼저 황족 가운데 독행으로 이름 높았던 연왕 조우를 들었다는 점은 야이샛키들아 내아들 노터치라는 식은 아니었다는 증거다(이에 대해 모자라는 팔랑귀 조상을 내세운 게 명제의 총신인 유방과 손자였으니 참으로 한숨나오는 아이러니다).

 

두 번째는 실제로 번병으로 세웠어도 그것이 기능할 수 있었느냐 하는 문제이다문제의 황친통어책으로 인해 종실제후는 대부분 작위만 유지하는 정치행동의 수단과 의지가 모두 박탈된’ 녹도인에 불과했고실제로 위서 무문세왕공전을 보면 드러나는 것이지만 수덕과 경학으로 이름난 한둘을 빼고는 대부분 요절하거나 후사를 남기지 못해 재간이 있었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고 준재였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써보지도 못한 채 명멸해갔다나이와 생존 여부도 문제가 된다명제가 30대 중반에 사망했음을 상기한다면 같은 항렬의 문제의 자식들의 경우 최소한 명제보다는 나이가 적었을 것이다또한 무제의 아들들(문제와 같은 항렬)은 요절하거나 삭봉당하거나 무능하거나 셋 중 하나인 경우가 많았다(언릉후 조창은 일찌감치 죽었고임성왕 조식 역시 태화 6년에 사망했다). 소릉여공의 보정을 담지할 실력도 경험도 없고그럴 지위와 권격도 영제상 보장되어 있지 않으며그나마도 수가 줄어 어떻게 손쓸 수가 없는 것이 명제의 붕어를 전후한 조위 황실의 실정이었던 것이다.

 

결국 태화 2 4월의 해프닝(가정 전투를 전후해 장안으로 행차했던 명제가 붕어했다는 소문이 돌자제신이 당황하여 조식을 정내에 맞이하려 했던 사건명제가 돌아오자 변후가 기뻐하며 언 쉽색휘가 그랬는지 찾아보라능했지만 명제는 인세의 말이 다 이런데 뭐하러 찾겠어여 ㅋ하고 담담히 씹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정사 배송지주에 전하고 있다)이 문제의 강력한 제후왕 통어책에도 불구하고 벌어졌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가의-조조 딜레마를 의식할 때 명제가 취할 수 있는 건 똑 같은 제후왕 통어책일 뿐이었다이래저래 모든 황조에서 이 딜레마와 더불어 황친들이 두어도 독내쳐도 독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실질적으로는 부황의 강력한 통제책을 유지하면서도 황족으로서의 유대 회복을 위해 세목적인 사안에서 양보하고보정을 지명하는 대에 친족과 황족을 끼워넣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명제에 대해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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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놈의 훈장


1. 용팔이와 동팔이 "구하시는 물건이 총판에도 없고요, 저희가 권해드릴 수 있는 건 이것 뿐이네요."

ㄴ '특약가'가 중격적 의미로 리테일 단위에서 사용된다는 건 이제는 뭐 상식이니까.
    야 속아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이 양반들아. 더 돌아다니기 번로하니까 사주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명심하거라.


2. 여성의 성욕

ㄴ 신성하고 고아하고 구극적 효율성을 그 종성에 내재하고 있으며 어떠한 정리에도 휘둘리지 않는 우월한 여성들이 더럽고 미추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즉물적이며 오직 世係를 이어가기 위한 수단일 뿐인 남성따위가 갖는 성욕을 가졌을 리가 없다능(농치는 것도 아니고, 졸자는 남성이다).

      아 뭐 꼭 요즘 교접 얘기가 밸리에서 대류를 타서 하는 이야기는 아님. ㅇㅇ


3. 사료거지들 "난 충분히 전거를 검토하고 입론적 차원에서만 이야기하는 거임 너같이 사실의 나열만 하지는 않음"

ㄴ 이건 뭐 더 부언할 필요가 없고... 조슬 까라. 나는 공부자같은 현덕이 없어서, 역시나 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비도 그 자체인 니놈들 따위한테는 뭐 어디가 어디라고 구구절절 말해줄 생각도 없다. 니놈들은 나열할 사실이라도 검토해보고 개념 위에 개념 쌓는 소리하냐? 젖병진들앆ㄲㄲ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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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멈 받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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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멈 시망


0941 부천역 3번/4번 플랫폼에 올라서자마자였다.
3번 플랫폼에는 전역운행 완행편이 도착(소요산행)했고
4번 플랫폼쪽 운행정보 표시기에는 구로급행이 2개 역 전에 있었다.
여기서 딸리는 캐쉬와 버퍼메모리와 좁은 버스를 총동원하여 측지를 끌어낸 결과...

보통 급행의 경우 늦어도 최소 전역운행편과는 2~3개 역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저 구로 급행을 타서 구로역에 완행편보다 먼저 도착한 후
그걸 타고 신도림에 가서 갈아타자.

그리하여 0946 4번 플랫폼에 도착한 구로 급행편을 타고 출발.
그리고 마침내 0957 구로역에 도착하여
헥헥거리고 뛰어가는 순간...
곧바로 도착하는 소요산행 완행편.
결과적으로 신도림에 도착하는 데까지 소요된 시간은 거의 용산 급행을  타고 온 것과 비슷했음.

그걸 타고 지각을 면했다는 훈훈한 이야기.
타면 탈수록 즐거운 수도권 지하철


부언 : 급행편수 좀 늘려달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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